정신분석 (psychoanalysis)에 대한 소개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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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에 대한 간략한 개요 및 핵심 원리


정신분석은 지그문트 S. 프로이트 (Sigmund S. Freud; 1856-1939)가 창안한 심리치료의 독특한 형태입니다. 동시에 정신분석은 인간의 심리적 기능, 발달 및 정신병리에 대한 모형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에 하나의 통일된 치료 이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정신분석적 이론과 치료 모형들은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여러 국가 출신의 이론가 및 치료실무자들의 저작을 통하여 다양한 갈래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한편, 단일화된 이론적 관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신분석적 관점들을 관통하는 특정한 기초 원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초 원리에는 다음의 내용이 포함됩니다.


1) 모든 인간은 부분적으로 의식 밖에 있는 소망 (wishes), 공상/환상 (fantasy), 또는 암묵적 지식 (tacit knowledge)에 의하여 동기화된다.

2) 무의식적 동기의 의식화를 촉진함으로써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3)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인 감정, 공상, 사고를 회피하는 개인만의 방식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사람들은 변화에 대하여 양가적이며 따라서 이 양가성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심리치료자-내담자 간의) 치료적 동맹/관계를 내담자 자신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의식 및 무의식적) 심리 과정 및 행동을 탐색하는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6) 치료적 관계를 변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7) 내담자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살아 온 자신의 방식이 자기파괴적 패턴을 지속시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정신분석의 작업 빈도


정신분석의 초창기에는 내담자/피분석가가 정신분석가를 주당 4-6회 만나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다만 회기당 진행 시간은 현재보다 더 짧았습니다 (현재는 많은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45-50분을 한 회기로 잡습니다). 당시에는 주당 4-6회의 치료가 2주에서 6개월 정도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정신분석의 목표가 증상의 제거/감소에서 더 근본적인, 성격 기능의 변화로 발전함에 따라 정신분석의 평균 치료 기간은 6년이나 그 이상에 이르기까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현대 정신분석가들은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치료가 방법론적인 면에서 중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실증 연구에서도 드러나는 바, 증상은 상대적으로 덜 집약적이고 더 단기적인 치료를 통하여 변화될 수 있는 반면 성격 기능 및 더욱 근본적인 심리 구조는 변화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더욱이, 내담자-심리치료자 간의 관계가 변화 (=치료)의 핵심 기제로 여겨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 집약적 치료는 전문가-의뢰인 간의 관계가 치료적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정신분석에서도 장기, 집약적 치료가 항상 가능하거나 권장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재는 주당 1-2 회기를 단기적으로 진행하는 정신분석 치료실무자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태동과 다양한 정신분석 학파의 탄생


프로이트가 초창기 정신분석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초창기부터 정신분석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창조적 아이디어들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생각을 더 분명하게 하는 데 기여하거나, 프로이트에 의하여 여러 방식으로 동화·수정되었습니다. 다른 몇 가지는 당시 프로이트에 동화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제자와 후대의 정신분석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신분석이 빈(Vienna)에서 프로이트의 저작과 강의를 비롯한 그의 동료 집단의 초창기 저술에 의하여 태동하였지만, 프로이트가 사망한 1939년 이래 정신분석은 빈, 취리히, 베를린, 부다페스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 중심지를 둔 국제적 움직임이 되었습니다. 이 센터들은 정신분석의 발전에 각각의 고유한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1939년 이래로 서로 다른 많은 정신분석 학파와 이론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학파들은 프로이트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프로이트 이론의 주요 가정이나 그의 이론의 여러 측면에 관한 정도 (degree), 그리고 방법론적 권고 (technical recommendation)에 대하여 서로 동의하거나 의견을 달리합니다.


오늘날의 정신분석


현대  정신분석을 바로 이해하려면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프로이트 개인의 사상적 타당성이 정신분석적 치료 및 이론의 타당성과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한 문화권에서 저술 활동을 하였던 개인입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현대에 비하여 당시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더 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시대, 문화권의 차이). 그 중 일부는 처음부터 오류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일례로, 북미와 다른 지역에 알려져 있는 프로이트 당대의 정신분석과 현대의 정신분석 간에는 몇 가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프로이트 당대의 정신분석에 비하여 현대 미국의 정신분석은 치료적 관계의 상호성 (mutuality)을 훨씬 더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계 일부에 존재하는 오해와 달리 정신분석적 치료의 효과와 여러 구성 개념들의 타당성에 대하여서도 상당한 실증적 자료가 존재합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정신분석적 이론과 실제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미국 특유의 낙관주의 (optimism) 경향과 평등주의 (egalitarianism) 철학도 미국의 정신분석이 발달하는 데 영향을 준 중요한 요인들입니다. 더불어, 현대 미국에서 선두적 역할을 하고 있는 여러 정신분석가들이 문화 혁명기인 1960년대에 성년이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당시에는 뛰어난 여성주의 정신분석 사상가들이 전통적 정신분석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가부장적 가정들 - 치료적 관계에서의 힘의 역동, 성 역할에 대한 정신분석적 사고 등 - 에 도전하였고 이를 재정의하였습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현대 정신분석의 발달에 영향을 준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입니다. 포스트모던적 감성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가능하다는 가정에 도전하고, 보편적 진리의 존재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유지하며, 이론적 다원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40여년 동안 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 수련기관의 박사 후 과정 (post graduate psychoanalytic training institute)에 대거 유입됨으로써 미국 정신분석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정신의학에 의하여 지배되던 기존의 정신분석에 의미 있고 지적으로 흥미로운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현재 정신건강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 내에서 발생한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현대 정신분석의 일부라고 볼 수 없는 이론, 실제, 혹은 태도의 특정 단면만을 가지고 정신분석적 전통을 이해하는 척하거나 희화화하는 편파적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정신분석에 대한 타당한 비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신분석은 그 실제 가치에 비하여 홀대 받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문화적 편견이 부분적으로 원인 제공을 했다고 봅니다. 낙관주의, 실용주의, 속도 및 수단의 강조,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는 문화적 특성 등은 그 자체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인간 본성의 복잡성과 변화과정의 어려움을 평가절하 하는 우매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그 문화적 전통의 특성 상 삶의 비극적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고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고취시킵니다 (미국적 평등주의 및 낙관주의). 더불어, 실용주의를 중시하기에 빠른 해결, 임시 변통의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편향을 보입니다. 이는 정신분석이 시작된 유럽이 긴 가난, 지배 계층의 민중 압제, 계속되는 종교적 갈등과 억압, 그리고 전례가 없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던 문화적 배경과 대조됩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미국의 정신분석이 유럽의 정신분석보다 더 낙관적이고 실용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정신분석은 여전히 정신분석의 전통적 가치관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에는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 만족이란 "행복함 혹은 그렇지 않음"이라는 이분법적 형태와 같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 그리고 변화가 늘 쉽거나 빠르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 등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현대 정신분석의 특징 및 그 이론과 실제를 이해하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의뢰인에게 최선의 치료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합니다. 또한 정신분석은 문제될 수 있는 문화적 맹점과 편견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 정신분석 내에 과거 정신분석의 특징적 성향, 즉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는 파격적 문화, 진보적 사회적 성향, 그리고 정치적 참여를 추구하던 정신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정신분석 순응주의자와 전복주의자 간의 알력


정신분석은 과거 여러 해 동안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가장 세력이 큰 정신건강, 정신보건/의료 체계였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의료보험체계와 임상 수련 프로그램들로부터 점점 더 소외되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정신분석이 그 전성기에 정통성 (orthodoxy), 편협성 (insularity), 오만함 (arrogance), 그리고  엘리트주의/선민사상 (elitism)적 경향을 지닌 보수적 문화 세력으로서의 평판을, 변명의 여지 없이,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은 다소 소수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당면하는 구체적 문제들에 대한 치열한 해결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정치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제한적이라는 평판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보다는, 경제적으로 편안한 사람들에 한정된, 자기-방종적 취미라는 관점으로 비추어 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신분석이 이러한 평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 다른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한 환자의 증상에 대한 치료적 접근/방법의 개발을 목적으로 정신분석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로이트는 향후 정신분석이 치료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이론과 문화적 비평에까지 확장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프로이트 및 그와 함께 하였던 초기의 정신분석가들 중 다수가 의학적 배경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신분석이 의학의 하위 전문 분야 (subspecialty)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다양한 교육적 배경과 지적 흥미를 지닌 분석가 (주: 분석가/analyst는 정신분석가/psychoanalyst와 동의어로 취급되며 매우 흔하게 혼용됩니다)에 의한 정신분석의 문화적, 지적 폭 (breadth)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프로이트를 포함한 초창기의 분석가들 중 다수는 세기가 전환되던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진보적 정치 정책들에 의한 신분 상승 기회를 특징으로 하는, 교육 받은 유대인 중산층 출신이었습니다. 정통파가 아닌 (= secular, 주: orthodox의 상대적 반대를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됨) 서구 유럽계 유대인들은 당시 전통적 유대주의와 유럽 사회 중간에 끼어 그 어느 쪽도 될 수 없는 지식층으로서 외부로부터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초기의 분석가들은 자유주의적, 진보적/개혁적 지식층, 즉 전통적으로 억압 받고 사회적으로 무시/소외 당한 집단에 속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수용성을 지향하였으나 동시에 지배적인 사회적 가정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고려하곤 하였습니다. 이 비판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전복주의적인 정신분석(가들)의 입장은 진보적 사회 개혁의 비전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정신분석은 부분적으로, 사회적 억제 (suppression)와 그에 따른 성 (sexuality)의 억압 (repression)의 발병적 효과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의 특권에 대한 다양한 탐욕/과시욕에 비판적이었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료 정신분석 진료소, 치료비의 유연한 조정, 그리고 의학적 수련을 받지 않은 전문가에 의한 정신분석을 적극적으로 주장 및 지지하였습니다 (주: 이는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정신건강 관련 의료법과 몇몇 정신분석 수련 기관의 정책을 고려하여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한 잠재적 불이익이 모두 우리나라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초기 분석가들은 진보적 사회 활동가들로서 정치적 비판과 사회적 정의에 헌신하였습니다. 프로이트의 가장 가까운 동료였던 Sador Ferenczi (샨도르 페렌치, 1873-1933)는 사회적 위선과 관례주의를 비판하고, 부다페스트에 무료 진료소를 설립하였으며, 여성과 동성애자 개인의 권리를 열정적으로 보호하였습니다. Karl Abraham (카를 아브라함, 1877-1925), Ernst Simmel (에른스트 지멜, 1882-1947), 그리고 Max Etington (막스 아이팅곤, 1881-1943)은 1920년대 베를린에 공립 정신분석 진료소를 설치하였고 이 진료소는 이후 사회적, 정치적 진보주의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Danto, 2005). 이 분석가들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비판이 폭넓게 논의되었던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의 베를린의 사회, 문화적 영향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적 변혁에 대한 중개인으로 여겼고 정신분석을 의학적 학문 (medical descipline)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정치적 관례 (political codes)에 대한 도전이자 사회적 임무 (social mission)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Wilhelm Reich (빌헬름 라이히, 1897-1957),  Erich Fromm (에리히 프롬 , 1900-1980), 그리고 Otto Fenichel (오토 페니켈, 1897-1946)과 같은 저명한 분석가들의 정신분석과 사회적 관심사 간의 융합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Horkheimer (막스 호르크하이머,  1895-1973) 와 Adorno (테오도어 아도르노, 1903-1969)는 1947년, 계몽의 변증법 (Dialectic of Enlightenment)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속 나치와 공산주의 정권/체제의 그림자 속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던 저자들은 신-마르크스 이론, 대륙 철학, 그리고 정신분석적 사고를 조합하여, 대체 어떻게 계몽이 새로운 시대의 자유가 아닌 예측 불가한 야만성으로 이어졌는지 그 모순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저자들의 핵심 논지는 대량 생산과 조직화에 대한 자본주의적 가치의 강조와 과학, 기술, 그리고 도구적 사고의 결합이 냉담하리만큼 합리적인 전체주의적 체계의 발달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인간은 상업/상품화되고, 인간성을 상실하여 물건과 같이 객체화되며, 사회적 순응을 강요 받거나, 냉담하도록 합리적인 국가 기구의 몽상적 이상 (Utopian ideal)에 이득이 된다는 가정 하에서 몰살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치주의의 득세로 인하여 미국으로 피난 갔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구성원들은 공유된 문화적 관념이 미국 소비자 문화에 영향 받은 현상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대중 매체 시장이라는 개념과 신념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된 욕구 (needs)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지칭하기 위하여 cultural industry (문화 산업)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문화 산업의 영향 하에서) 특정한 종류의 맥주/와인을 마시거나, 특정한 종류의 차를 몰거나, 특정한 옷을 입을 경우, 사랑, 행복, 그리고 만족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사회화 됩니다. 그밖에 미국에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관념들 중에는 "충분히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그 누구든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념은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계층 구성원들이 접근 및 이용 가능한 기회의 불균등함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물질적 사회의 조건이라는 현실을 넘어서지 못한 실패에 대하여 개인을 비난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와 같은 관념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최대 이익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유형의 비판적 분석은 레이건 시대 이후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면에서 볼 때 매우 시기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에 이어 미국과 소련의 전시 동맹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만연하던 시기, 미국으로 망명한 분석가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비판에 의하여 적어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정신분석을 지지하기 위한 싸움이 당시 미국 상황과 잘 조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북미에서 정신분석의 미래를 필시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고 정신분석을 하나의 직종으로 정립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정신분석의 직업화 (professionalizaton)가 정신분석의 특성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조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정신분석이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1920년대, 직업으로서의 미국 의학은 의학적 수련의 질을 개선하고 표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카네기 재단에서 1910년에 발행한 플렉스너 보고서 (Flexner Report)는 미국의 의학 수련을 비판하고 보다 더 철저한 입학 기준, 수련, 그리고 직업적 규제를 요구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 대한 반발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정신분석의 발전에 지배적 역할을 한 의사들은 의학적 배경이 없던 (정신분석) 수련 후보생에 의하여 (의사로서의) 직종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1938년, 미국정신분석학회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는 공식적 정신분석 수련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의사로 제한하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즉, 직업으로서의 정신분석의 가치가 떨어질 것에 대한 염려가, 과학적 체면, 혁신의 좌절, 그리고 사회적 보수주의를 향한 경향을 동반하는 순수주의자 (purist), 엘리트주의자 (elitist), 그리고 경직된 형태의 정신분석의 발달하는 데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학이 건강 서비스/관리 직업군 내에서 특권적 지위를 굳히고 정신분석이 의학의 하위 전문 분야/부전공으로 자기매김을 하면서 직종으로서의 정신분석이 가지는 사회적 특권도 함께 커지게 되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수련 중인 레지던트들의 정신분석 수련 과정에 포함된 엄격하고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 역시 정신분석이 정신의학 내 엘리트적 부전공이라는 인식에 기여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주요 정신건강의학과의 학과장들 (chairs)은 정신분석가들이었고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시 수련 프로그램들은 최소한 어느 정도 정신분석 지향적 치료를 제공하였습니다.


미국은 정신분석계의 중심이 되었고 수많은 시간, 노력, 그리고 재원이 정신분석적 수련과 직종으로서의 정신분석의 정립에 투자되었습니다. 이에 정신분석은 수익성이 좋고, 위신이 높으며,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직종이 되었고 종종 기성 세대에 저항하기보다는 그 존중받는 일원이 되고자 하는 데 관심이 있는 후보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Jacoby, 1983; McWilliams, 2004). 전형적으로 지적인 풍요와 학문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배경과 교육적 체계에서 비롯된 유럽의 원류 분석가들과는 달리, 당시 미국에서 정신분석적 수련에 입문한 여러 후보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제한적이고 매우 기술적인 (technical) 교육적 체계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정신분석은 마치 의학적 절차 하면 떠올리듯, 기법의 옳고 그름에 대한 완강한 생각을 동반하는 편협하고 기술적 접근으로 적용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특정한 기술적 경직성과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50년도 더 전에, 당시 미국정신분석학회의 회장이었언 Robert Knight은 1920-1930년대에 상대적으로 더 독창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특성이 두드러졌던 분석가 후보자들에 비하여 자신 당대의 후보자들이 더 "관습적인 (conventional)"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Knight (1953)는 1950년대의 정신분석 수련생들이 "그다지 자기성찰적이지 않고, 자신에게 할당된 문헌만을 읽으며,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수련의 필수 요구 사항만을 완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p. 218)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게다가 위계와 권위에 대한 전통적 존중을 수반하는 의학적 교육은 비판과 심사숙고에 대한 장려 보다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성을  정신분석 수련에 주입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감성이 치료자/분석가-내담자 간 관계를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치료적 관계에 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제도화,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물들였습니다 (Jacoby, 1983; Moskowitz, 1996). Marie Langer (마리 "리리" 랑헤르, 1910-1987)처럼 라틴 아메리카로 피신한 유럽계 분석가들은 자신의 급진적 정치적 견해를 숨기고 정치적으로 더 보수적인 정신분석을 설립하는 데 기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여 성장하면서 자본가 계급의 착취적 특성에 대한 마르크스적 비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의학 및 정신분석 수련을 1930년대에 완료한 마리는 나치즘 운동으로 인하여 빈에서 피신하여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마리는 그곳에서 아르헨티나 정신분석학회의 창립을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르헨티나로부터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까지 정신분석의 입지를 다지고 그것을 퍼뜨리는 데 헌신하였습니다. 마리는, "나의 직업적 삶에 대한 몰입과 좌파 정치로부터의 분리는 부분적으로 이민자로서 갖는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 (insecurity)에 대한 방어이자 나와 내 가족이 새로운 사회에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새를 찾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방어였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Hollander, 1997, p. 55). 아르헨티나와 라틴 아메리카의 타 지역에서도, 정신분석은 점차로 정신 건강 분야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60년대에 이르러서, 정신분석은, 당대 미국의 이론적 관습성의 어떤 면들과 유사하게도, 일종의 이론적 경직성과 관습적 신념 (orthodoxy)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세력들은 미국 정신분석의 극적 변화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생물학적 정신건강의학의 대두와 새로운 향정신성 약물의 폭발적 발전하면서 정신분석은 미국 정신건강의학 내에서 다소 유행에 뒤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신분석적 사고를 몰아내고자 시도하였던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3판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III; 미국정신의학회, 1980)은 당시 미국에서 정신분석을 점차적으로 하찮게 여기던 기조에 기여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에서 정신분석적 이론과 실무의 기초를 소개하던 교육 과정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동시에, 정신분석 기관에 수련을 신청하는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확연하게 감소하였습니다.


미국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내 정신분석 분과 (Division 39; 39분과)가 바로 이 무렵에 구성되었습니다. 1986년, 39분과는 미국정신분석학회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를 상대로, 정신분석 수련 기관들이 심리학자들을 정신분석 수련 후보생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방침이 독점규제를 위반한 것이라는 집단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39분과는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분야가 의사들에 의하여 독점 당하는 것은 내담자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정당한 경쟁을 방해하고 그들의 생계을 빼앗는 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소송이 처리되었을 당시, 시장 원리는 이미 심리학자들에게 정신분석 수련 기관들의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정신분석적 수련을 추구하는 후보생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전통적 정신분석 기관들이 심리학자 수련 후보생들을 유치하고자 열의를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McWilliams, 2004; Moskowitz, 1996).


지난 30년 동안, 미국 정신분석 이론의 발전에 더 유의하고 혁신적인 기여를 한 많은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면에서 미국 정신분석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Glen Gabbard, James Grotstein, Theodore Jacobs, Otto Kernberg, Thomas Ogden, Owen Renik, 그리고 Robert Wallerstein처럼 동시대 의학적 정신분석 수련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분석가들의 지극히 중대한 기여는 결코 경시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그렇더라도 지난 30년 동안 정신분석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창의적 공헌이 양적으로 볼 때 폭발적으로 많았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기여가 정신분석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정신분석 이론가 및 연구자들은 심리학, 사회학, 정치 과학 및 철학과 같은 다양하고 폭넓은 사회과학에 기반하여 정신분석을 덜 배타적이고 더 지성적으로 중요한 학문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정신분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심리학적 영향은 다양한 요소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 임상심리학 수련 프로그램은 사실적 정보의 암기와 기술적 능숙함에 무게를 둔 정신건강의학 수련과 달리 비판적 사고 능력의 발달을 강조하여습니다. 더욱이, 심리학적 수련은 정신병리와 변화의 과정에 대한 이해와 관련한 기초 심리학적, 발달적, 및 사회적 과정들에 대한 연구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들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에 비하여 실증적 연구 방법론에 관하여 더 많은 수련을 받습니다. 비록 이러한 특징이 심리학자들로 하여금 정신분석 수련을 거친 이후 항상 실증적 연구 프로그램을 유지하도록 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다양한 이론적 구성개념들의 한계점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 정신분석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준 또 다른 중요 변수도 존재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정규적 정신분석 수련을 추구하는 것이 직업적 특권이나 경제적 성공에 대한 길일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형적인 (정신분석가) 후보생은 본질적 이유에 의하여 이 학문에 접근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일반적 문화권 및 주류 임상심리학계 내에서 정신분석이 소외당하는 지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신분석학에 이끌린 사람들은 지배적으로 문화적, 직업적인 가치나 가정을 믿고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현상에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따라서, 모순적이게도, 정신분석에 대한 소외가 혁신적 사고의 잠재적 촉매를 제공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현대 미국 정신분석에서 부각되는 학문적 감성은 1940-1960년대 미국 정신분석이 그 전성기였을 때에 비하여 오히려 초창기 정신분석가들 (위에 언급한대로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이었던)의 감성과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 대 정신역동적 치료


전통적으로 정신분석가들은 정신분석과, 정신분석적 혹은 정신역동적 치료 (이 두 용어는 앞으로의 글에서 혼용되어 사용됩니다)를 명확하게 구분하였습니다. 정신분석이라는 용어는 분명한 특징을 지닌 치료의 한 형태를 지칭하기 위하여 구별되었습니다. 정신역동적 치료는 정신분석적 이론에 근거하지만 정신분석을 정의하는 몇 가지 특성이 부재하는 치료의 한 형태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수 년에 걸쳐, 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특성이 정신분석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거나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한 공통적 입장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정신역동적 치료에 비하여) 더 장기적이고 (예: 4년 또는 그 이상), 집중적이며 (예: 한 주에 4회 이상), 더 개방적이고 제약이 없습니다 (open-ended, 예: 예정된 종료일이나 회기 수에 제한이 없는). 뿐만 아니라, 전통적 정신분석은 (a) 내담로 하여금 그들의 무의식적 동기를 인식하도록 돕고, 내담자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주거나 지나치게 지시적이지 않으며, (c) 분석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를 내담자에게 소개하지 않음으로써 내담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d) 치료 회기 중 분석가 자신의 개인적 삶이나 기분에 대한 정보 노출을 감소시킴으로써 일정 수준의 익명성을 유지하며, (e) 분석 과정에 전적으로 관여하기 보다는 중립적이고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f) 내담자는 긴 의자 (couch)에 비스듬히 기대되 분석가는 내담자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의자에 똑바로 앉는 일을 포함하는 치료자적 입장으로 특징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정신분석의 몇 가지 주요 특성에 대한 이와 같은 전통적 개념화는 고전적 정신분석 (classical psychoanalysis)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정신분석과 정신역동적 치료가 구분되기 시작한 과정


정신분석이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지배적 형태의 치료가 되면서, 분석가들은 초창기와 달리 넓은 범위의 내담자들을 실험적으로 치료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신분석은 다양한 특성과 필요를 지닌 내담자에 맞추어 여러 치료적 요소를 변화시킬 필요를 직면하였습니다. 어떤 내담자들은 자신의 무의식적 동기에 대한 탐색을 너무 위협적이거나, 두렵거나, 불안정한 느낌으로 경험하는 반면 구조화, 조언, 및 문제해결에 대한 조언으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몇몇 내담자들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안심시켜주는 개입을 필요로 하는 반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형의 개입을 선호하지 않는 치료자를 대할 때 매우 좌절스러워 하거나 불안감을 경험하였습니다. 또 다른 내담자들은 긴 의자/소파에 눕는 행동을 불편하게 느끼거나 치료자에 대한 굴종의 한 형태로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내담자들은 잦은 회기수나 장기 치료에 참가할 만한 시간이나 재정적 자원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담자의 필요에 응대하기 위하여 치료자들은 이 모든 요소들을 변화시키는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수정된 형태의 정신분석은 향후 정신역동적 치료로 명명되었습니다.


정신분석이 학문으로 발전하여 나가면서, 분석가들에게 "진짜" 혹은 "순수한" 정신분석을 정신분석의 다양한 수정판들과 구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기조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정규 정신분석 수련은 엄격하고, 많은 것이 요구되며, 시간의 소모가 큰 활동입니다. 정신분석 수련은 수년 간의 수업, 광범위한 임상적 지도, 그리고 장기간의 개인적 심리치료를 포함합니다 (이를 training analysis라고 합니다). 정신역동적 심리치료를 실무적으로 수행하는 치료자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심리학적으로 더 기능이 떨어진 내담자를 공립 병원 환경에서 진료하는 레지던트인 경우가 많았고 정규 정신분석적 수련에 대하여서는 제한적으로만 노출된 편이었습니다. 이에 일종의 직업적 계층 구조가 발달하여 개업 환경 (private setting)에서 기능할 수 있고 전통적 정신분석에 더 적합한, 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육의 혜택을 받은 내담자들은 더 경험이 많고 더 고도로 훈련된 분석가들에게 의뢰되었습니다. 이 계층 구조는 일종의 직업적 조합주의 (guildism)와 결합하여 "순수한 정신분석"과 정신역동적 치료 간의 명백한 구별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을 강화하였습니다. 여기서 정신역동적 치료는 (정규 정신분석) 훈련을 받지 않거나 최소한의 훈련만을 받은 치료자가 제공할 수 있는 도움과 온전히 구별되지 않는, 다소 희석되거나 질이 낮은 형태의 정신분석으로 여겨졌습니다.


정신분석과 정신분석적 혹은 정신역동적 치료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유들이 납득이 감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적 수련은 필연적으로 숭배적이고 (cultish) 선민의식적 (elitist)인 특성을 일부 발전시켰으며 전통적으로 "진짜" 정신분석을 구분하는 다양한 요소들 (예: 장 의자의 사용, 일주일 중 최소 회기의 수, 조언이나 자기-개방의 지양) 역시 다소 의례적인 (ritualistic) 특성을 더하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량의 에너지가 "무엇이 진짜 정신분석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들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이와 같은 유형의 토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여러 정신분석가들은 더 이상 그와 같은 경직된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안문헌의 저자는) 정신분석과 정신역동적/정신분석적 치료의 구분이 어떤 이론적으로 타당한 기준 보다는 해당 학문 분야의 정치적 및 직업에 대한 선민의식적 요소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전통적 정신분석과 관련한 요소 전체를 무가치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해이자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 익명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전통적 정신분석의 입장은 특히 덜 격식적이고 위계적인 경향이 있는 현대 미국 문화권에서 내담자로 하여금 소외감을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훈련되지 않은 치료자의 자기-개방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조언과 적극적 지시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만, 조언이 지나치면 내담자가 스스로 자원을 구성하는 능력의 발달을 저해하거나 무력한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내담자들은 단기 치료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많은 내담자들은 실제로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장기간의 정신분석적 치료를 병리화하거나 그것을 부분적으로 문제되는 형태의 의존성이라고 보는 경향성은 한 문화의 개인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나친 강조이자 전통적 문화권에서 더 특징적인 상호의존성에 대한 평가 절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내담자에게, 주 1회의 심리치료는 적절합니다. 그러나 치료 회기의 빈도가 더 높을 때 발달 가능한 (내담자-심리치료자의) 치료적 동맹의 강도가 (내담자 내면의) 변화 과정을 촉진시키는 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번안문헌의 저자는 대부분의 내담자를 본인의 맞은 편에 앉게 하고 치료합니다 (긴 소파나 장의자를 사용하지 않음). 그러나 긴 소파의 사용은 실제로 미묘하면서도 중요하고, 동시에 접근이 쉽지 않은 내담자의 내적 경험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내담자를 도와주는 경우처럼 가치 있는 형태로 치료적 과정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장의자의 잠재적 이득에도 불구하고,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지속적인 면대면 만남이 변화 과정에 핵심적 영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내담자가 친밀감과 관련된 문제를 안고 치료실의 문을 두드린다면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정서적 교환 및 그 질적인 면을 시시각각으로 탐색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얼굴을 봄으로써 내담자가 경험하고 있는 감정에 대한 미묘한 감각을 발전시키고 그 감정에 더 잘 맞추어 공감하기 위하여 치료자가 내담자의 표정을 관찰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혹은 내담자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정서적 반응을 측정, 판단하기 위하여 치료자와 면대면 만남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가들은 내담자의 핵심적 변화 과정으로서, 내담자와 치료자 간의 지속적인 상호적 정서적 조절 과정을 찾아 들어가며 이 과정은 내담자-치료자 간의 시각적 만남이 있을 때 촉진됩니다. 만일 이와 같은 시각적 교류가 없다면 치료자와 내담자는 서로의 비언어적 행동을 관찰하거나, 계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에 관여하거나, 서로의 정서적 경험에 영향을 주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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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문헌

Safran, J. D. (2012). Psychoanalysis and Psychoanalytic Therapies.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참고문헌

Danto, E. A. (2005). Freud's free clinics. Columbia University Press.

Hollander, N. C. (1997). Love in a Time of Hate. Rutgers University Press.

Jacoby, R. (1983). The repression of psychoanalysis: Otto Fenichel and the political Freudians. Analytic Press.

Knight, R. P. (1953). The present status of organized psychoanalysis in the United States. Journal of the American Psychoanalytic Association, 1(2), 197-221.

McWilliams, N. (2004).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A practitioner's guide. Guilford Press.

Moskowitz, M. (1996). The social consequence of psychoanalysis. In R. M. Perez Foster & R. A. Javier (Eds.), Reaching across boundaries of culture and class: Widening the scope of psychotherapy (pp. 21-46). Jason Aro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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